안동고등학교총동창회


모교역사

모교역사

안동고등학교의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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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3월 20일 6년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는 제도(법률제178호)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에 따라 안동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분리하여 독립된 학교(1951년8월31일문교부인가)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내가 안동고등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51년 8월의 일이었다. 9월 초순이 되자, 나는 안동중학교 4.5.6학년 학생들과 새로 임명된 김세위 교감선생, 안동중학교 교사로 있던 오동수,남우석,김창수 선생 등과 함께 안동고등학교로 이사를 갔다. 학생들에게는 자기가 쓸 책상·걸상을 각자 운반시켰고, 교사들은 어렵게 얻은 칠판 3매를 나눠들었다"

- 권상철 {사람에 심은 희망의 나무}에서-

" 아무 것도 없었다. 용상동에 있는 안동고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교사(校舍)도 교문도 없었다. 산 밑에 있는 벌판에 덩그러이 놓여 있는 민가 한 채가 유일한 재산이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는 해도 너무 심했다"

- 회고담 {안동고50년사}에서-

"당장 수업부터 하였다. 수업이 開校의 출발이었다."

칠판은 감나무와 아카시아 나무에 걸었고, 그 앞에 책걸상을 배열하고 노천 수업을 실시하였다. 비가 오면, 산기슭 나무 밑으로 피하고 비가 그치면 다시 모여 수업을 받았다. 나도 학생들도 이런 수업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지나고 보니 내 생애 최고의 영광의 시기였다."

- 권상철 {사람에 심은 희망의 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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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도 교사(校舍)건축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하긴, 당시의 형편으로는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중략....교사(敎師)들과 학생들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리고는 진흙을 이겨서 흙벽돌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 한 명도 불평하지 않고 자기집 일보다 열심히 일하였다. 우리는 이미 가족이었다.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고 비가 오면 기별이 없어도 찍어놓은 흙벽돌이 빗물에 허물어질까 3km가 되는 읍내 집에서 분주히 달려와서 이런저런 덮개로 덮어 주기도 하였다.
흙벽돌을 쌓는 것은 만들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리저리 재고 맞추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곡예 하듯 쌓아 올리기를 시행착오와 더불어 거듭하였다. "

- 권상철 {사람에 심은 희망의 나무}에서-

제 1회 졸업생(1952년)

/김엽(전세명대총장), 정석원, 지태욱, 이준호, 권대율, 강위중,배동승,박춘서(경북전분대학어학원장),박성철, 백언식, 김규창, 신연철, 남정식(목사은퇴), 권태주, 김영현, 권오강, 최병준, 이신형, 이안남, 손호경, 문선재(목사/예일신학대학총장),
김종룡, 권태련, 임태진, 권중락,김지화 남인석,김시호,천봉석, 김택현, 이상희, 김응수, 강성우,김경한, 권중동(전노동부장관), 신기태, 김택용,박용호,강성욱,김상기,이해종,권상혁
권영숙, 이광영,권대호,배선학,김영년,권오중,정일순,조덕호, 황하청, 권오익, 권영대, 임성하, 강구원

/"가능하다
우리는 할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우리 힘으로 교사를 완성한 것은 단순히 집을 한 채 지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다.
사제동행(師弟同行)으로 이 일이 성공한 다면 이 자체가 폐허가 된 이 나라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교육적인 큰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 회고담 {안동고50년사}에서-

“내가 보낸 60년간의 교단 생활중에서 가장 행복하였고 보람있었던 것은 안동고등학교 재직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 권상철 {사람에 심은 희망의 나무}에서 -

" 조선의 최고의 학자이자 기라성 같은 제자를 길러냈던 위대한 사표 退溪 이황 선생,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내며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국난을 수습하였던 서애 류성룡 선생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기에 [인다안동(人多安東)]이라 하였다. 안동이 반듯시 이어가야할 유산(遺産)이자 전통(傳統)이었다. 대대로 안동은 도의(道義)를 숭상하고 인의예절(仁義禮節)을 잘 지켜왔지만 , 근대 이후 존현양사(尊賢養士)의 서원교육이 시대의 풍파로 해체되면서 그 기맥이 쇠퇴해 있었다. 나는 이점에 착안하여 안동고등학교 교육의 목표를 첫째 [도의교육(道義敎育)]으로 설정하였다"

- 회고담 {안동고50년사}에서 -

/ " 우리는 흙을 이기고 ,볏짚을 썰고 , 물을 길으면서 흙벽돌을 만들었지만 모두가 만족했다. 이곳이 젊음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우리의 요람이며, 많은 후배들이 거쳐갈 배움의 전당(殿堂)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땀을 흘렸다. 피곤했지만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흙벽돌 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책상을 교실로 옮겼다. 바닥은 그대로 울퉁불퉁한 밭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꿈도 컸다.나는 안고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안고를 사랑한다.
또한 안고에 거는 기대도 크다."

- 권중동 1회/전노동부장관 회고담 {안동고50년사}에서 -

“소형 영어 사전을 뒷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통째로 암기하겠다는 멋있는 욕심과 고집도 있었다 .”

" 흙벽돌 교실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교실과 교실 사이가 천장 쪽은 삼각형으로 트인 채로 수업을 했으니, 옆 교실의 말소리가 다 들리는가 하면 , 우리교실 앞·뒷반에서 먼저 수업이 끝나게되면 시끄러워 수업을 계속할 수 없는 형편이다........교복은 대개 무명이나 광목같은 것에 검정색 물감을 들인 것이었는데 , ...... 당시 교모(校帽)는 윗 부분을 면도칼로 줄지어 찢고 그 자리를 재봉틀로 박아 쓰고 다니는 학생들만의 낭만과 멋이 있었으며, 소형 영어 사전을 뒷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통째로 암기하겠다는 멋있는 욕심과 고집도 있었다"

- 박구일 2회/전국회의원 회고담 {안동고50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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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입학식을 마치고 다음 날부터 바닥(밭)흙을 떠서 물에 개어서 볏짚을 섞어 벽돌을 찍기 시작하였다. 처음 찍어보는 벽돌이어서 잘 되지를 않았다. 물의 배합이 좀 많으면 벽돌을 틀에서 빼면 모양이 무너지고 , 물이 적으면 틀에서 빼기도 어렵고 군데군데 뭉쳐진 곳이 많았다.
추워져 가는 가을 날씨에 발벗고 물 섞인 흙을 밟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렇게 지은 집은 10년 뒤 '사라호'태풍에 무너져 버렸다. 흙벽돌 집 창은 한지(韓紙)창이었다.
난방은 교실 가운데 흙으로 둘레를 막아 숯을 피워 추위를 겨우 막도록 설비(?)되었다.

- 류동주 3회/전서울시구청장 회고담 {안동고50년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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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신축이전

본교가 마뜰에 터를 잡고, 지역의 인재를 길러내는데 근 50여 년을 보내게 되었다. 50년 전, 본교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학생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본교 주위가 개발이 됨으로써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큰 도로가 학교 앞을 지나가고, 주택지가 조성되는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해진 것이다. 그리고 학생수는 팽창해 가는데 교지(校地) 확장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필요한 시설을 갖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서히 학교 이전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여, 이용한 교장이 재직하던 1990년 초에 학교 당사자와 동창회 인사들 간에 이전을 위한 계획이 공론화되었다. 이에 따라 이용한 교장은 학교 이전 계획을 관계 당국과 동창회 등에 보고하고, 부지 물색 작업까지 구체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몇 해를 보내게 되었다.

19951월에 다시 학교 이전 계획을 검토하였다. 당시 이진우 교장은 학교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전 예정 부지 조건을 검토하여 19954월에 학교 이전 계획서를 경상북도교육청에 제출하였다. 이 결과 이전이 확정되고, 이어서 1996년에 신축 교사를 짓게 되었다. 1996910일은 안동고등학교 신축 공사의 첫 삽을 뜨는 날이었다. 경상북도교육청이 시행청인 이 공사는 건축 사무소 옥저가 설계하고, 주식 회사 대백종합건설이 시공을 맡았으며, 주식 회사 토펙 엔지리어링이 감리하였다. 이로부터 신축 교사가 완공되기까지는 2년이란 세월이 소요되었다.

학교 부지는 안동시 정상동 산 127-1번지 일대의 골짜기를 밀어서 확보하였다. 골짜기를 들어내는 부지 조성 공사는 산을 깎아내는 공사에서 시작하였다. 골짜기를 깎아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청석(靑石) 암반으로 말미암아 공사하는데,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부지가 조성되고 시설물이 건축되는 과정에서도 몇 차례의 건축 설계가 바뀌는 등 시행 착오가 많았다. 이 문제는 시공에서 준공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맡았던 당시 공진영 교장의 증언이 있다.

2년간의 공사를 끝으로 새 학교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95,396의 대지 위에 175억 원을 들여서 세워진 연건평 16,735의 건물이 그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로비를 만들어 입구자를 이루는 본관 건물은 행정 관리동, 교사동, 특별 교사동으로 나누어 지었고, 교사 남쪽에 자리 잡은 학이재(學而齋), 또한 기숙사로서의 웅장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비마상이 들어선 중앙 광장, 야외 공연장, 그리고 조경이 잘 된 환경 등은 여느 대학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캠퍼스의 모습이었다.

학교 이전 공사가 마무리된 1998729일에 신축 교사 교정에서 당시 김주현 교육감, 권정달 동창회장 등을 비롯하여 많은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본교의 학교 이전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다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특히 안동이 고향인 김주현 교육감은 교육감으로서 마지막 역작을 남기는 심정으로 본교 이전에 심혈을 쏟았다. 그는 안동고등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학교가 완성되고, 교정에 嶺秀人이란 휘호를 남겼다.

준공식에 이어 19981015, 6일 양일간에 걸쳐 이사를 하였다. 차량이 동원되었지만, 정규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이 직접 짐을 나르기도 하였다. 이때 솔선 수범하는 학생들의 자세는 안고인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히고 있다. 물론 교직원들의 노고도 무척 컸다.

이로써 이사는 무사히 끝났다. 19981017일에 학생들은 새 교정, 새 교실에서 책을 펼쳤다. 마뜰 시대가 마감되고 정상동의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자율형공립고등학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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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2011. 4. 1.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지정되어 또 한 번 도약의 기틀을 만들었다.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지정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교사 50% 초빙제가 가능해 유능한 선생님을 모셔올 수 있다.
자율형 공립고에서는 전체 교사의 50% 범위 내에서 초빙 임용이 가능하다. 일반고교의 교사 인사 이동은 선생님들의 이동 점수나 같은 학교 및 지역 근무 연한 등에 구애를 많이 받으며, 교사 초빙도 교사 총 정원의 10%이내만 가능하다. 그러나 자율형공립고에서는 학교 운영 취지에 공감하고 학생 지도에 전념할 의향과 전문성을 지닌 분이라면 이동 점수에 관계없이 모셔올 수 있어 능력과 열의를 겸비한 선생님들로 교사진을 구성할 수 있다. 또 공모로 임용된 학교장이 책임 있는 학교 경영을 하게 된다.

풍부한 재정 지원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
자율형 공립고에는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의 특별지원비 외에도 지자체 지원비 등 풍부한 운영비가 지원되고, 시설 및 기자재 확충비도 적극 지원된다. 따라서 주요 교과의 수준별 수업이나 학생선택형 방과후 수업 등 특별 수업에 필요한 선생님을 학교 자체로 더 채용하여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며, 해외 교류 활동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개설할 수 있다.

특색 있는 교육 활동을 실시하여 학생부 종합 전형 등 수시모집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자율형 공립고에서는 학교 헌장에 따른 특색 있는 교육 활동을 전개한다. 자율적인 교육과정, 풍부한 인력 및 재정을 바탕으로 한 학생 맞춤식 교육 활동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학생부 종합 전형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율형공립고 학생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특목고나 자사고의 학생과 마찬가지로 수시모집 중심의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을 수 있다.
경상북도에는 2021년 기준으로 모교 등 10개 고등학교가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되어 운영중이나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점차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한다는 소식이다.

안동고등학교

주소 : (36694)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12 3층 / 전화 : 054-842-8100 / 팩스 : 054-842-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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